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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키다리 아저씨 이승철

우먼동아일보

2014. 07. 22

까칠한 뮤지션 이승철이 언제부턴가 나눔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해마다 배고픔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최빈국 차드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도 인정하는 바, 이승철의 인생은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키다리 아저씨 이승철

아프리카 최빈국 차드에 ‘희망학교’를 설립하고 있는 이승철은 올해는 의료진과 함께 차드를 찾아 ‘구순구개열’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새 삶을 열어줬다. <br>


지난 3월 초, 이승철(48)에게 인터뷰 요청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인천공항에서 수속 절차를 밟는 중이었다. 출국지는 프랑스 파리. 하지만 그곳은 경유지일 뿐 최종 목적지는 아프리카의 최빈국 차드였다. 3년 전부터 해마다 이곳을 찾고 있는 이승철은 올해도 어김없이 아내 박현정(50) 씨와 함께 비행기에 오르려는 참이었다. 그와의 만남은 기약 없이 ‘다음’으로 미뤄졌고, 결국 석 달 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이승철을 만났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차드 이야기로 흘렀다.  
이승철은 고 박용하가 2009년부터 차드에 학교 건립을 추진하다 사망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2011년부터 국제구호기구 굿네이버스, ‘희망TV SBS’와 손잡고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배움을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 건립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박용하의 ‘요나스쿨’ 완공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리앤차드스쿨(Lee & Chad School)’도 이미 3곳이나 건립됐다.
올해는 고려대 의대 의료진 8명과 함께 의료 봉사도 펼쳤다. 변변한 보건 시설과 의약품이 없는 현지의 현실을 목격한 뒤 초기에 의약품을 지원한 적이 있는데, 의료진과 함께 차드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 의료진 동행과 관련된 업무는 아내 박현정 씨가 도맡아 했다. 굿네이버스 측과 상의해 이번에는 차드 지역에 유난히 많은 구순구개열(입술과 입천장이 붙지 않아 생기는 선천적인 안면 기형) 환우들에게 무료 시술을 해주기로 한 것. 박씨는 직접 고려대 의료진을 찾아가 봉사에 동참해주길 부탁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키다리 아저씨 이승철

<b>1</b> 남편보다 더 열정적으로 아프리카 어린이 구호에 앞장서고 있는 아내 박현정 씨.<b> 2</b> ‘리앤차드스쿨’에는 올해 처음으로 축구부가 생겼다. 아이들과 신나게 축구를 즐기는 이승철.


척박한 땅에 뿌린 배움의 씨앗
차드에 도착하자마자 이승철 부부와 의료팀이 찾은 곳은 구순구개열 환자가 많이 있는 아베세 마을이다. 의료진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증상을 보이는 네 살배기 파티메와 열 살 발렛을 비롯해 총 12명의 아이들에게 새 인생을 선물해줬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수술인데, 이곳 아이들은 그걸 받지 못해서 평생을 ‘악마의 얼굴’이라며 또래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수모를 받는다는 게 얼마나 안쓰러워요. 기근이 심한 아베세 지역의 아이들은 80%가 영양실조예요. 구순구개열도 임신 중 산모가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을 때 걸리거든요. 파티메 수술 중에는 갑자기 정전이 돼 심장이 오그라들기도 했는데 다행히 바로 전기가 들어와 마지막 아이까지 수술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죠.”
아베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부부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요나스쿨. 이승철은 박용하 대신 졸업식에 참석해 아이들에게 학사모를 씌워주고, 사진 촬영 후 즉석에서 졸업 앨범도 만들어주는 등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개교 당시 2칸밖에 안 되던 교실은 어느새 6칸이 됐고, 학생 수도 1백 명에서 6백 명으로 크게 늘었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를 보고 그는 다시금 박용하의 지난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용하가 정말 큰일을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학교를 세우겠다는 생각만으로도 큰 희망을 준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받은 사랑을 이 먼 곳에서 되돌려주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죠. 차드에는 졸업식 문화가 없어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여력이 없는 거죠. 아이들이 졸업식 마지막에 우리말로 ‘오랫동안 사귀었던~’ 하면서 ‘작별’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가슴 뭉클하더라고요. 우리나라가 빠른 시간 안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 높은 교육열이 한몫했듯이 이곳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훗날 차드를 이끌어갈 대통령도 한 명 나오면 좋겠어요. 하하.”
리앤차드스쿨은 2010년에 1호가, 2012년에 2호가, 그리고 올해 3호가 세워졌다. 이번에 이승철은 리앤차드스쿨 2호와 3호를 방문했다. 도고레 마을에 있는 2호 학교에 이승철이 나타나자 전교생은 환영의 의미로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2년 사이 가장 큰 변화는 축구팀이 생겼다는 것. 평소 축구 광팬인 이승철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축구부 아이들과 신나게 축구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최근 새로 문을 연 3호 학교의 개교식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 2만여 개의 벽돌을 나르며 모두가 힘을 합해 만든 리앤차드스쿨 3호는 1호, 2호를 지으며 쌓은 노하우 덕분에 규모나 시설 면에서 가장 우수하다. 이승철은 “가보고 깜짝 놀랐다. 다른 곳에는 없는 강당도 있고 수업 교구도 더욱 업그레이드돼 있더라”며 웃었다. 학교는 단순히 교육의 장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보건소와 우물을 갖춘 마을회관의 역할을 하기에 현재 차드 내에서도 희망학교 건립 프로젝트는 뜨거운 이슈라고 한다. 희망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먼 곳에서까지 이사를 오면서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새롭게 형성될 정도. 덕분에 차드에서 이승철은 유명인사로 떠올랐고, 이번에는 차드방송국에서 직접 취재를 나오기도 했다. 그곳 사람들은 그를 ‘미스터 리’라고 부른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아요. 학교와 보건소에 태양열 전광판도 달아야 하고, 조만간 아이들 급식으로 우유가 제공될 예정인데 그것 관련해서 우유 회사와도 얘기가 잘돼야 하고, 빵 굽는 기술과 기계를 제공해주겠다는 업체도 있고, 아이들 학용품을 선물하겠다는 회사도 있어요. 이번에 가서 3호 학교에 망고 나무를 심고 왔는데, 5년만 있으면 망고가 자란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아이들이 간식으로 따 먹으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학교 근처에 비닐하우스도 크게 짓고, 농장과 과수원도 만들어서 마을 주민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키다리 아저씨 이승철

콘서트 수익금으로 학교 건립 기금 마련
이번에 이승철은 리앤차드스쿨 4호 부지도 둘러보고 왔다. 학교 유치 여부는 주민들의 노력에 달렸다.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한 마을부터 학교를 지어주기 때문이다. 이승철은 “몇 달러 안 되는 꼬깃꼬깃한 돈을 들고 굿네이버스 지부를 찾아와 학교를 지어달라고 하는 마을도 있었고, 느티나무 아래 의자 몇 개를 놓고 마을회 청년들이 나와 아랍어와 불어로 브리핑을 하는 곳도 있었다”며 차드 내 불고 있는 희망학교 열풍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그들을 보면서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는 걸 느꼈어요. 학교가 들어설 마을이 선정되면 그들에게 한 가지 숙제를 내줘요. 흙벽돌을 1만개 이상 만들어놓으라고 하는 거죠. 하나부터 열까지 무조건 공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함께 만든 학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예요. 또 6개월 정도 국가관과 세계관, 주인의식 등에 대한 교육을 해줌으로써 그들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게끔 하고 있어요.”
학교 하나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은 3억에서 5억원. 이승철이 맡고 있는 주 업무가 바로 학교 설립 기금 마련이다. 대부분의 돈은 그의 공연 수익금에서 나오고 그 밖의 자선 바자회를 통해 후원금을 마련하고 있다. 사실 학교 짓는 데 드는 돈을 마련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차드 아이들과의 일대일 결연. 이 때문에 이승철은 콘서트 때마다 차드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한다. 그는 “학교 10개를 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힘 닿는 데까지 차드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열아홉 살 때부터 29년 동안 스타가 아닌 적이 없었던 이승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음악적 재능과 꺼지지 않는 인기 때문인지 그에게는 늘 ‘범접하기 힘든’ 뮤지션으로서의 까칠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몇 년 사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결혼 후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키우면서 이승철은 더 이상 톱스타 이승철이 아닌 남편, 아빠로 스스로 걸어두었던 내면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 이 모든 긍정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그의 아내가 있다.
“사실 결혼 전에는 말할 수 없는 철부지였죠(웃음).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결혼을 해야 철이 드는 것 같아요. 아내는 사업을 했던 사람이라 저보다 추진력과 결단력이 좋아요. 그야말로 여장부 스타일이에요. 굿네이버스 활동 관련해서도 솔직히 저는 돈 모으는 거 말고는 크게 하는 일이 없어요. 아내가 다 밑작업을 해놓거든요. 미팅 잡아놓으면 저는 가서 만나기만 하면 돼요(웃음). 아내 덕분에 인생의 목적이 바뀌었고 음악에도 또 다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공연을 할 때도 이제는 다른 목적이 생겼어요. 단순히 제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노래로만 보답하는 게 아니라, 많은 분들께 봉사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몇 년 전 크리스천이 된 그는 봉사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아내와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사역 기회가 주어졌고, 믿음이 커지면서 예전 같으면 거부감을 보였을 일을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해외 봉사활동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그런 제안이 들어오면 ‘그냥 돈으로 주는 게 훨씬 낫지 않나’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고 왜 다들 그렇게 열심히 해외에서 봉사하는지 알게 됐다. 처음에는 코를 찌르는 악취 때문에 아이들의 손도 잡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해도 아무런 불편함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키다리 아저씨 이승철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nbsp;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뿌듯한 게 어디 있겠어요. 저 역시 음악인으로서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도 많지만, 젊었을 때처럼 히트곡 하나에 연연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지금만 같으면 좋겠네요.”


딸 키우는 맛에 푹 빠져있는 요즘
올해로 결혼 생활 8년째에 접어든 이승철은 요즘 주위에 장가 안 간 친구들을 보면 ‘불쌍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가정이란 울타리가 주는 안락함은 물론이고,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예쁜 둘째 딸 때문이다. 일곱 살 난 원이는 얼마 전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주제곡 ‘Let it go’를 하도 많이 부른 바람에 성대결절에 걸렸다고 한다.  농담인가 싶었는데 이승철은 “목소리가 안 나와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의사가 성대결절이라 며칠 동안 노래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며 허허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데다 스케이트, 수영, 승마 등 못하는 운동이 없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요즘도 밤에 아이를 옆에 끼고 잘 정도로 딸 사랑이 대단하다.
“조그만 녀석이 수영장에서 자유형 하는 걸 보면 정말 귀여워서 미치겠어요. 스키도 다섯 살 때부터 가르쳤는데 벌써 상급자 코스에서 한 번에 내려온다니까요. 말하는 건 또 얼마나 예쁜데요. 하하. 옛날에는 부모가 자식 대신 죽을 수 있다고 하는 게 어떤 건지 몰랐는데, 요즘은 정말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이를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을 것 같아요. 원이는 어릴 때부터 칭얼대지도 않고 졸리면 혼자 방으로 들어가 잤을 정도로 순둥이에요. 요즘은 제 공연장에 오는 사람들한테 먼저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요. 팬이 뭔지도 알고, 아빠가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거 보면서 뿌듯해해요(웃음).”
미국 뉴욕에 있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 중인 큰딸 이진 양은 미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5개 대학으로부터 장학금 입학 스카우트를 받았고, 내년 졸업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2007년 결혼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딸은 첫 만남에서부터 그에게 거리감을 두거나 예민하게 굴지 않았다고 한다. 이승철은 “큰딸도 워낙 무던한 아이라 사춘기도 없이 지나갔다. 처음에 어색한 건 있었겠지만 까탈스럽게 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 자라서인지 처음부터 엄마의 결혼을 적극 찬성했어요. 그래도 처음엔 어색하니까 말을 쉽게 걸거나 하진 않았는데, 대학에 간 뒤부터 급격히 친해지게 되더라고요. 외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아이 스스로도 많이 성숙해졌고, 성인이 된 뒤로 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 많아지니까 공감대도 많이 형성되고요. 특히 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들을 자주 만나게 해줘요(웃음).”
이승철은 큰딸에게 ‘남자 고르는 기준’에 대해서도 자주 조언을 건넨다. 그가 딸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건 “여자를 항상 웃게 해주는 남자를 만나라”는 것. 반대로 절대 따져서는 안 되는 것이 “학벌과 돈”이라고 강조했다.
“시간 날 때마다 딸한테 얘기해요. ‘남자 학벌 보지 마라. 남녀가 같이 사는 데 학벌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돈도 보지 마라. 시댁 돈이 결코 네 돈이 될 수 없다’라고요. 아내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얼마 전에 아내한테 ‘한 명문대에서 대학원 입학 제의를 받았는데, 한번 가볼까?’ 했더니 바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하더라고요. ‘당신한테 제일 필요 없는 게 학벌이야’라고요. 하하. 저도 인정해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키다리 아저씨 이승철

올해로 결혼 생활 8년째에 접어든 이승철·박현정 부부. 이승철은 아내를 만나고 난 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말한다.<br><br>


아내 권유로 30년 만에 처음 타는 국산 차
이승철은 과거 한 방송에서 아내와 결혼 과정을 공개하며 “인생의 매니저가 필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혼자 살아가는 데 불안한 느낌이 있었고, 누군가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 아내를 만났다는 것. 결혼 전 박씨는 사업과 관련해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당시 두 사람의 사주를 본 점쟁이는 박씨는 물이고 이승철은 산이라고 표현하며 “무조건 잘 사니 결혼하라”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보다 두 살 연상인 박현정 씨는 이승철의 기대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주옥같은 조언을 해주는, 그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다. 이승철은 “1년, 3백65일 중 3백60일을 아내와 붙어 있다”며 다정한 부부 사이를 자랑했다.
“제가 원래 집 밖에 잘 안 나가는 성격이라 하루 종일 붙어 있을 때가 많아요. 또 제가 뭔가 큰 그림을 그리면 아내가 나머지 일은 알아서 다 처리해주니까 매니저가 정말 필요 없게 됐어요(웃음). 아직 자세히 얘기하긴 힘들지만 제가 통일 노래를 하나 만든 게 있는데,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 중이에요. 그 일도 아내가 다 맡아서 관계자들과 미팅도 하고, 외국 기관에 편지도 쓰고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아내의 가장 큰 장점은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다는 거예요. 덕분에 부부싸움은 1년에 한두 번 할까, 말까? 사업을 하던 사람이고 연상이라 그런지 생각이 저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철두철미해요.”
2007년 홍콩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승철은 결혼 10주년 때는 한국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결혼식 때 모셨던 지인들을 다시 초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그는 “아내가 유난 떠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내 계획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다. 외제 차도 못 타게 해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국산 차로 바꿨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훗날 재산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기로 뜻을 맞췄다. 가수 생활 30년 동안 ‘국민 가수’라는 호칭을 달고 산 만큼 많은 사람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돌려줘야한다는 게 그의 신조. 나이가 들수록 물질적 소유가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것인지를 깨닫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욕심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동안 숱한 히트곡을 발표하며 ‘발라드의 황제’로 불리고 있는 이승철은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OST 곡 ‘사랑하나봐’ 발표와 동시에 온라인 음악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7월 5일부터는 전국 콘서트 ‘나이야~가라’로 또 다시 팬들을 찾아간다. 그에게 오랫동안 가수로서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다행히 사람 신체 중에서 목소리 노화가 가장 더디다고 하네요(웃음). 성대 보호를 위해 노래를 많이 안 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라이브 공연을 많이 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목을 아끼는 게 중요하거든요. 무엇보다 고집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 생각만 옳다고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고 해요. 물론 왕년에는 한 성깔에 한 고집 했죠(웃음). 오히려 나이 들면서 타인에게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특히 음악 하는 사람은 유연한 사고가 더욱 중요해요. 그래야만 현시대의 사람들이 누구나 공감하는 그런 멜로디와 가사가 나와요.”
‘슈퍼스타 K’ 초대 심사위원으로 매회 출연자들에게 섬뜩한 독설을 날렸던 이승철은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시즌6에도 심사위원으로 나섰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회가 거듭될수록 그의 독설도 줄어든다는 것. 대신 출연자에 대한 애정 어린 격려와 조언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출연자의 수준이 점점 더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도 독설 심사평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의 말 한마디를 듣고자 피땀 흘려 무대에 오르는 출연자들을 위해서라도 정확한 심사는 당연한 그의 몫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뿌듯한 게 어디 있겠어요. 저 역시 음악인으로서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도 많지만, 젊었을 때처럼 히트곡 하나에 연연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지금만 같으면 좋겠네요. 하하.”



글·김유림 기자 | 사진·이은석 사진작가(레이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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